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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의 집
창 덕 궁
최재숙 글 ㅣ 홍선주, 달·리 그림 ㅣ 웅진주니어 ㅣ 20쪽 ㅣ 10,000원
창덕궁은 사적 제122호로 1405년 태종 때 건립된 조선왕조의 왕궁이다. 조선시대 5대 궁궐 중에서 본모습이 가장 그대로 남아 있으며, 자연과 완전하게 어울리도록 지었기에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왕실 생활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그림책은 조선시대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님이 살던 궁궐인 창덕궁 곳곳을 안내하고 있다. 창덕궁의 주요 건물을 중심으로, 그곳에서 어느 사람들이 어떤 일들을 하며 살았는지도 생동감 있게 담아낸다. 실제 사진 위에 그린 그림과 페이지마다 나오는 보충 설명은 읽는 이의 이해도를 높인다. 그리고 책 뒷부분에 나오는 '한 걸음 더'는 창덕궁 등에 대한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초등 교과서 수록 도서이므로 초등 저학년 때 읽고, 초등 5학년 사회 과목에서 역사를 배우기 전 아이와 부모가 함께 다시 정독을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책을 읽은 후 창덕궁으로 나들이를 떠나,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문화유산을 살펴보자 .
뒤로는 산(응봉), 앞으로는 물(청계천), 동쪽에는 창경궁이 그려진 '창덕궁'지도
고려대학교 박물관 제공에서 제공한 <수전 전도>를 재구성한 것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돈화문 사진 위에 궁궐을 지키는 군사와 오가는 사람들을 그려 넣었다.
나라의 주요한 행사를 크고 화려한 인정전
사진 위에 앉아 있는 임금과 절하는 신하를 그려 넣어 인정전의 용도를 쉽게 알 수 있다.
선정전 사진 위에 왕, 대신, 사관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림을 통해 선정전에서 임금과 신하가 나랏일을 의논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사관'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아이들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궁궐에는 임금만 살지 않는다. 임금의 아들이자, 다음 임금님이 될 세자의 집 '동궁
'세자의 선생님'에 대한 보충 설명이 나와 있다.
꽃과 나무, 연못 그리고 정자 등이 잘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궁궐에 숨겨진 왕실 정원인 후원
임금이 정해 준 암호로 서로를 확인하면서, 창덕궁의 밤을 지키는 군사들
< 저자 소개 >
글ㅣ 최재숙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였다. 지은 책으로는 <하늘이 이야기> <엄마를 빌려줄게> <알강 달강 커다란 밤 한 톨> 들 이, 옮긴 책으로는 <난 자동차가 참 좋아> <거꾸로 박쥐> 들이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여러 차례 창덕궁을 찾으면서,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어린이들이 느끼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고 세계 문화유산인 창덕궁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지게 되기를 바란다.그림 ㅣ 홍선주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그림에 대학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대학 졸업 뒤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2000년 출판미술협회 공모전에서 동화 부분 은상을 수상했다. 그린 책으로 <콩중이 팥중이> <초정리 편지> <금자를 찾아서> <슬기둥 덩뜰당뜰 저 소리 들어보오> < 진휘 바이러스> 들이 있다. 옛날 임금님과 여러 사람들을 사진 위에 하나하나 그려 넣으며, 궁궐이 생활의 공간이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이 책을 보고, 살아 있는 문화유산인 궁궐을 좀 더 친근하게 바라보길 바란다.그림 ㅣ 달리
그림책 기획ㆍ디자인ㆍ글쓰기 모임이다. 기획한 책으로 '우리 시 그림책'이 있다. 창덕궁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잘 드러 날 수 있게 사진을 그림과 어울리도록 공간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했다.
임금님의 집 창덕궁 저자 최재숙 출판 웅진주니어 발매 2008.11.27.
창덕궁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www.cdg.go.kr를 참조하세요.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고 경복궁을 창건했지만 제2대 정종은 옛 도성인 개성으로 다시 수도를 옮겼다. 제3대 태종은 개성에 남으려는 대신들의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1404년(태종 4) 다시 한양 천도를 결정하였다. 이때 경복궁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새로 창덕궁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이는 경복궁에서 있었던 정치적 사건에 대해 태종이 꺼려 한 이유가 컸지만, 두 개의 궁궐을 동시에 운영하는 양궐 체제가 성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1405년 10월에 공사가 끝났으며, 10월 25일 창덕궁으로 이름 붙였다. 이때 완성된 창덕궁의 규모는 외전 74칸, 내전 118칸이었다.
임진왜란 중 소실된 궁궐들 중 제일 먼저 복구를 시작한 것은 창덕궁이었다. 창덕궁이 먼저 복구된 까닭은 그전까지 임금들이 주로 거처하던 곳이 창덕궁이었으며, 경복궁은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의견이 가세되었기 때문이다. 창덕궁 복구공사는 선조 말에서 광해군 초까지 이루어졌다. 그러나 중건하고 약 10년 후 1623년 인조반정 때 외전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25년간 방치되었다가 1647년에 복구되었다.
이후 효종대에는 대비를 위해 수정당, 만수전 등이 건축되었고, 현종대에는 집상전이 건축되었다. 숙종대에는 제정각을 건축해서 각종 천문기기를 설치했고, 청심정, 영타정, 사정기비각, 능허정, 애련정 등을 지으면서 후원을 본격적으로 꾸몄다. 정조는 학문을 중심에 둔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각종 시설을 건축했다. 규장각을 중심으로 봉모당, 개유와, 열고관, 서고, 서향각 등을 세워 역대 임금의 자료와 새로 구입한 도서류를 보관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세자를 위한 공간도 크게 확장했다. 중희당과 수강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1803년(순조 3) 12월 선정전 행각에서 시작된 화재가 인정전을 비롯한 내전의 상당 부분을 불태웠고, 곧 재건공사가 시작되었다. 창덕궁의 마지막 대화재는 1917년 11월에 일어났다. 대조전 서쪽 행각의 온돌에서 시작된 화재는 내전 영역 대부분을 불태웠다. 복구공사는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등의 전각을 이건하는 것으로 주요 부분을 충당했다. 이때의 재건공사는 창덕궁의 원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또 자동차 차고와 전등, 탁자, 의자, 커튼 등 근대식 설비와 가구의 도입도 건축의 면모를 바꾸는데 일조했다. 대한제국의 황실 가족들은 창덕궁의 낙선재 영역에서 마지막까지 거주했다.
창덕궁은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왕가의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창덕궁의 공간 구성은 경희궁이나 경운궁 등 다른 궁궐의 건축에도 영향을 주었다. 궁의 동쪽에 세워진 창경궁과 경계 없이 사용되었으며, 두 궁궐을 ‘동궐’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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